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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육신공원의 불편한 진실-
작성자 성병* [2020-09-25 10:2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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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공원의 불편한 진실.hwp

사육신공원의 불편한 진실 <특별기고>

 

노량진 언덕의 황량한 바람 - 고혼(孤魂)

한강대교를 건너 노량진 언덕에 사육신공원이 있다. 이곳이 조선 초, 계유정난(1452)으로 김종서 등 원로대신들을 살육한 뒤 어린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정권을 잡은 세조(수양대군)에게 항거하다 무참히 처형된 사람들의 무덤이 있는 장소이다. 조선시대 최대의 충신 살육사건으로서 이를 병자사화라고 일컫는데, 그 당시 사지가 찢어지는 참혹한 거열형(車裂刑)을 당하고 새남터에 버려진 희생자들의 시신을 매월당 김시습 선생이 몰래 수습하여 강 건너 노량진언덕에 매장하였다. 분명한 역사적 사실임에도 이제는 마치 오래된 전설과 같이 아름다운 충신들의 이야기로 승화돼 민간에 전해지고 있다.

여기는 오랫동안 황량한 분위기여서 지나는 과객의 비감 어린 발자국만이 남아 있었다. 그러다 조선 후기에 접어들면서 숙종~영조~정조 대에 이르러 선비(儒者)들에 충렬을 기리기 위해 제사를 봉행토록 허락하였다. 500여 년 동안 한적한 곳이었던 이 장소에 광복 후에야 비로소 정부의 관심으로 충신들을 기리는 육각비가 세워지고 해마다 제향행사가 열리게 된다. 1970년대에 들어서 국력 신장에 따른 국민정신교육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역사상 훌륭한 인물들을 현창하는 사업이 시작되면서 사육신묘역도 대대적으로 주변 환경을 정리하고 공원으로 재조성하는 사업이 착수되었다.

공원 입구의 홍살문을 지나 언덕을 오르다 보면 안내판과 만난다. ‘사육신 묘역에 관한 설명문으로 여기에 성삼문 · 박팽년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그리고 맨 밑에 김문기의 역사적 자취에 대해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기왕에 알려진 여섯 분의 사육신 외에 김문기가 올려져 있는 것이다. 500여 년이 흐르는 세월 동안 모든 사람들이 충신의 표상으로 기억하고 있던 사육신 명단에 언제부터, 무슨 연유로 김문기라는 인물이 끼어든 것일까?

 

역적에서 충신으로, 역사적 평가의 반전(反轉)

역사상 어느 시대에나 당시의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있다. 조선 초기의 건국과정을 거치며 세종 대에 이르러서 정치적 안정을 확보하여 국가적 기반이 탄탄해진다. 전통적으로 왕조국가는 왕위계승의 절차에 갈등이 없어야 안정된 국정운영이 가능하다. 이른바 적장자(嫡長子)계승 원칙이 전형적인 왕권 교체의 모범적인 사례로 인식되고, 그 실천으로써 정권의 정당성과 연속성이 보장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선 초의 정치적 시대정신은 적장자에 의한 왕위계승원칙의 실현이었다.

그러므로 세종에서 문종으로, 문종에서 단종으로 이어지는 3대에 걸친 왕위계승은 완벽한 적장자계승의 원칙이 구현된 왕조국가의 모범적 정권승계행태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현실은 탐욕자의 등장으로 순리가 헝클어지기도 한다. 바로 수양대군의 찬역(簒逆)행위가 순탄한 정치적 과정을 파괴한 역사적 반동(反動)의 사례이다. 이긴 자는 충신이고 진 자는 역적이라고 했다. 그래서 계유정난과 병자사화로 희생된 사람들은 수백 년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역사적 인물로서 제대로 평가되거나 예우를 받지 못하였다. 조선의 국가이념인 성리학의 핵심개념이라 할 의리(義理)정신이 패도(覇道)정권에 의해 오랫동안 압눌되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생육신 중 한 분인 남효온이 육신전(六臣傳)을 지어 사육신의 충의(忠義)가 세상에 알려지고 차츰 단종충신들이 역사 흐름의 수면 위로 등장하게 된다.

숙종 대부터 시작하여 영·정조 대에 이르러 충신들의 명예가 회복되고 역사적 재평가가 이루어졌으며, 제사왕국인 조선사회에서 최선의 예우인 제향의 대상으로 선정하여 추모하게 된다. 그리고 정조대왕은 왕명으로 단종충신들에 대한 제향의 위차(位次)를 정리하여 이른바 어정배식록(御定配食錄)을 확정하고, 영월의 단종 능 아래에 충신단을 만들어 제례를 봉행토록 하였다.

참고로 세조의 왕위찬탈과 단종복위기도와 관련하여 희생된 충신들의 제향 위차를 정리한 어정배식록의 구성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왕족으로 죽은 육종영(六宗英) - 안평대군 이용 · 금성대군 이유 · 화의군 이영 · 한남군 이어 · 영풍군 이전 · 하령군 이양

단종의 외척으로 죽은 사의척(四懿戚) - 송현수 · 정종 · 권자신 · 권완

계유정난 때 죽은 정승으로 삼상신(三相臣) - 황보인 · 김종서 · 정분

판서로서 죽은 삼중신(三重臣) - 민신 · 조극관 · 김문기

장수로서 죽은 양운검(兩雲劒) - 성승 · 박쟁

단종 복위 주동자로서 죽은 육신(六臣) - 박팽년 · 성삼문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어정배식록은 신분과 관직 그리고 충절의 강도를 가늠하여 여섯 등급으로 분류한 조선왕조의 공식기록이다. 그러함에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 현실 권력을 남용하여 역사기록을 변경하려는 행위는 역사에 대한 범죄라 단정하여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정조대왕은 영명한 학자 군주이다. 그의 업적을 부인하려는 작태를 용인한다면 21세기의 역사 지성이 과연 살아 있는 것인지, 엄중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육신 틈입(闖入)사건의 진상

 

권력자의 야바위 역사 왜곡

사건의 발단은 어느 한 개인이 자기 문중의 조상숭배를 위해 무모하게 벌인 과잉행태에서 비롯되었다. 앞에서 언급한 1970년대 사육신공원의 성역화사업에 뜬금없이 격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포함시켜 세간에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기존의 사육신묘역에 모시지 못했던 두 분, 하위지(河緯地)와 유성원(柳誠源)의 묘를 새로 모시려 하던 차에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이 정부의 핵심권력에 있으면서, 자기 조상의 허묘(虛墓)를 공원 재단장사업 과정을 통해 사육신묘역에 끼워 넣은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른 것이고, 엄청난 논란이 있었음에도 그 이후 오늘날까지 왜곡현장은 그대로 유지돼 오고 있다.

일개 가문의 영광을 위해 역사를 왜곡하려는 권력자와 그에게 곡학아세한 사람들 간의 유착 관계에서 비롯된 희대의 충신 끼워넣기(틈입 闖入) 사건에 대해 그 경위를 추적해 본다.

 

현대판 지록위마(指鹿爲馬)

육신(六臣)’이란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분은 남효온(南孝溫)이다. 그가 지은 <육신전(六臣傳)>에 수록된 인물들이 박팽년 · 성삼문 · 하위지 · 이개 · 유성원 · 유응부 등 여섯 분이란 것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러나 김문기는 육신전에 아예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며, 정조대왕의 어정배식록에도 김문기는 육신(六臣)에 해당되지 않는다. 다만 앞에서 예시한 바와 같이 사육신보다 위차가 두 단계 높은 삼중신(三重臣)’에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료에도 불구하고 김문기의 후손들은 남효온의 육신전이 잘못 기록되었다거나, 어정배식록의 편성에도 오류가 있었다고 몰지각한 억설(臆說)과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날조된 역사 해석을 강변하면서 사실(史實)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유신독재정권의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김문기의 후손이다. 그가 그릇된 조상숭배의식을 바탕으로 국사편찬위원회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여 사육신묘역에 자신의 조상인 김문기의 산소와 위패를 무리하게 안치하는 만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사육신(死六臣)이 사칠신(死七臣)으로 둔갑한 곡절의 내막이다.

그래서 ‘7’‘6’이라고 하는 바는, 오랜 옛날 중국에서 진시황이 죽은 후, 간신 조고(趙高)가 호해(胡亥) 황제에게 사슴을 가리켜 이라고 우겨댄 고사(故事)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역사왜곡은 선인(先人)의 기록정신에 대한 비례(非禮)

어정배식록의 순위 배정에서 공조판서를 지낸 김문기를 4위 등급인 중신(重臣)으로 예우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소장 신료들로 구성된 6위 등급의 사육신 대열에 끼어들려는 집착을 보여왔다. 바로 이 점이 사육신만이 충신이라는 착시적 무지의 소치라고 비난받는 것이다.

김문기 후손들의 사육신 끼어들기(틈입·闖入)기도는 선인(先人)들의 역사기록정신에 대한 비례(非禮)일 뿐 아니라, 후손들 스스로 자기 조상의 품격을 폄하시키는 자가당착적 역사 조작으로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허물만 덧붙이는 일일 것이다.

다행히도 국사편찬위원회는 사육신의 인적구성에 변경 사항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압력으로 사육신묘역에 들어앉은 김문기의 허묘와 위패는 그대로 있다. 사육신공원은 후세들을 위한 교육현장이다. 따라서 사육신묘역의 명실상부한 원상회복은 시대적 과제로 인식되어야 하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 세대의 당면한 책임이라 하겠다.

함석헌 옹은 <의인의 피>라는 글에서 이렇게 갈파했다. “육신(六臣), 말을 뛰어넘은 이 비장한 사실을 한국사람인 이상 반드시 알 필요가 있다. 차라리 세익스피어를 못 읽고 괴테는 몰라도 성삼문은 알아야 한다.”

사육신공원 곧, 절의(節義)의 상징적 장소가 제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글쓴이 : 月泉

 

* 출처 - <사육신 틈입사건> : 지은이 : 최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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